이사 준비

장서가들에게는 이사가 보통 이상으로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정량 이상의 책은 다만 부서지지 않을 뿐이지,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이사의 방해꾼이다. 작년부터 조금씩 책을 정리하고 있는데(일단 사무실에서 가져가지 않은 수천 권의 책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책 정리의 가장 큰 난점은 꽤나 시간과 공을 들여 ‘내보낸다’고 해도 생각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책장에 꽂혀 있는 책 50권을 뽑아 늘어놓으면 200권쯤으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한번은 정리한답시고 거실에 분류하여 쌓다가 도중에(꺼내느라 에너지를 다 쓴 탓에 며칠 동안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다시 집어넣은 적이 있다. 어지간히 책이 많을 때는 그래도 어떤 책이 ‘대충’ 어느 부분에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제 책을 샀다는 기억만 있을 뿐 도무지 위치를 짐작하기 힘들어 뻔히 책을 샀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필요해서 두 번 세 번 구입한 책이 몇 권이나 된다. 게다가 미스터리 장르의 책들은 참고 도서로 쓴답시고 사무실에 두고 가져가지 않다 보니 그 책이 집에 있는지 사무실에 있는지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죄악이다. 책을 구입해놓고 또 사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 읽기 위해 구입한 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이 죄악이다. 구입한 책을 모두 읽는 것은 아니다. 마쓰오카 세이고가 그랬던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책등을 보는 것도 독서의 일부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독서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예전에는 종종 서고를 ‘거닐며’ 책등을 읽었다. 이미 읽은 책들은 예전의 기억을 더듬에 새롭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은 그 안에 담겨 있을 내용을 상상해본다. 그런 책 가운데 몇 권은 펼쳐 훑다가 책상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은 이런 독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그렇게 할 수 없다. 책장에 제대로 꽂혀 있는 책보다 이중으로 겹쳐 쌓은 책들, 책장 아래 누워 책배만 보이는 책들, 시리즈가 여기저기 흩어져 모을 수 없는 책들, 상자 속에 있는 책들이 더 많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

이번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책들만 소장을 할 생각이다. 집은 도서관이 아니다. 필요한 책을 모두 갖고 있을 수는 없다. 없다면 구하면 된다. 구하지 못할까 두려운 책들의 양보다 내 욕심의 양이 너무 크다. 욕심이 죄악이다.

이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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