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 _이태준

화씨 451 | 2003/06/04 16:22 | 호야
무서록
이태준 지음
범우사 / 1999.12 / 3판 1쇄 / 168쪽, 하드커버 / 198*137*17mm / 6,000원

read or trash? ★★★★

우리말 문장의 즐거움
이태준의 <무서록>을 집어든 것은 우리말 문장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잘된 것이라도 번역된 글은 번역된 글 밖으로 나설 수 없기 때문에. 한동안 멀리 했던 우리말 문장 중에서도 이태준의 책을 잡은 건 명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상허(이태준의 호)의 산문, 지용의 운문"이라고 하더만 문장도 시대에 따라 변해서인지 처음 읽을 때는 그런가? 싶었다. 요즘의 문장이 방향하는 스타일에 비해서 지나치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읽힌다. 그리고 솔직하다. 요즘에 이런 글이 나왔다면 촌스럽다고 할는지도.

하지만 그 평범할 법한 글에서 단점을 잡아내기 힘들다. 나카지마 아츠시의 <산월기>를 원문으로 읽는다면 이와 비슷할까. 문장가,라고 하면 무언가 아주 독특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면 가슴을 치게 만드는 글을 쉽게 상상한다. 하지만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고, 가장 높은 경지에선 그와 같이 맛도 냄새도 색깔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한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무서록(無序錄)인지라 글의 순서나 일관된 소재도 없다. 여기에 실린 몇몇 글들은 글쓰기, 소설 또는 책에 관심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하다. 여러 번 읽어야 참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虎-

§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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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지는 석양은 성머리에 닿아선 불처럼 붉다. 구불구불 산등성이로 달려 올라간 성곽은 머리마다 타는 것이, 어렸을 때 자다말고 나와 본 산불의 윤곽처럼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꺼지는 석양일 뿐 아무 것도 아니다. 고요히 바라보면 지나가는 건 그저 바람이요 구름뿐이다. 있긴 있으면서 아무 것도 없는 것, 그런 것은 생각하면 이런 옛 성만도 아닐 것이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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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에 맞는 것을 쓴 작가에게는 상식 혹은 개념 이상의 창조가 있다. 그러나 기질에 맞지 않는 것을 쓴 작가에게는 기껏해야 상식이요 개념 정도다. 종교는 윤리학이기보다는 차라리 미신이기를 주장한다. 문학은 사상이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이기를 주장해야 할 것이, 철학이 아니라 예술인 소이所以다. 감정이란 사상 이전의 사상이다. 이미 상식화된, 학문화된 사상은 철학의 것이요, 문학의 것은 아니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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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정신의 대도大道는 영원히 온고지신에 있겠으나 고전의 육체미는 반드시 지식욕으로만 감촉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 그러므로 모든 고전의 고전미는 고완古翫의 일면을 지님에 엄연하도다. 고려청자나 정읍사에서 그들의 고령미高[齒+令]美를 떼어버린다면 무엇이 그다지도 아름다울 것인가 (pp.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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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거나, 전통이란 것이 오직 보관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죽음'이요 '무덤'일 것이다.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의 서재를 묘지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청년층 지식인들이 도자陶磁를 수집하는 것은, 고서적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완상이나 소장욕에 그치지 않고, 미술품으로, 공예품으로 정당한 현대적 해석을 발견해서 고물古物 그것이 주검의 먼지를 털고 새로운 미와 새로운 생명의 불사조가 되게 해 주러야 할 것이다. 거기에 정말 고완의 생활화가 있는 줄 안다. (pp.163)
2003/06/04 16:22 2003/06/0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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