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도둑
The Thief of Always
클라이브 바커 지음, 소서영 옮김
황금가지 / 2002.1 / 하드커버, 304쪽 / 218*160mm
9,800원


완벽한 영원보다 불안정한 현실을 돌려줘
이 책은 포지셔닝이 잘못된 책 가운데 하나다. 클라이브 바커는 호러 감독이고 호러 소설가지만 <시간의 도둑>은 청소년 성장 팬터지로 포장했어야 옳을 거다. 호러물을 찾는 독자에게 이 책은 희미한 자극밖에 주지 못하고 바커라는 이름 덕분에 책을 들었던 독자도 동화적 구성 때문에 실망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커란 이름을 희석시키고 청소년 팬터지로 옮겼더라면 괜찮은 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자, 이건 '판매'의 면에서 판단할 때의 평가고.

클라이브 바커는 <헬레이저>나 <캔디맨>으로 호러팬들에겐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헬레이저>는 호러 영화에서 아주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할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기도 하고. 그러면 그의 소설은 어떨까. 바커의 소설은 2002년에 번역된 <시간의 도둑> 말고도 <피의 책> 시리즈 1,2권이 나와 있다. 하지만 거의 주목은 받지 못했고, 영화화다 뭐다 해서 관심을 끈 신간 <아바라트>가 그나마 제일 알려졌을 터.

하지만 바다 건너에서의 성공과는 달리 <아바라트> 또한 그의 전작처럼 한국에선 홀대를 받고 있다. 어째서...? 그 이유를 더듬어 보기 위해 번역된 책들을 다시 읽었다. <아바라트>에 대한 평가는 이미 내렸지만 내 생각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바라트>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 잠깐 이야기했었지만 그 부분은 본격적인 리뷰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바커는 본디 '육체'에 집중하는 작가다. 각각의 호러 작가들은 모두 특징을 하나씩 갖고 있는데, 바커는 육체의 고통과 쾌락에 천착하여 호러의 색다른 경지를 발견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으로 보면 그를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로는 <아바라트>나 이 <시간의 도둑>보다는 <피의 책>이 적절할 것이다. <피의 책>에 대해서는 역시 따로 리뷰를 마련하고 있으니 자세한 건 뒤로 미루자.(자꾸 미뤄서 미안하다. 차라리 바커 기획을 할까도 생각했으나 생각났을 때 쓰지 않으면 기획이고 뭐고 게으름 속으로 모두 멸렬해버릴 확률이 90%라는 걸 감안해서 이해하시길)

<시간의 도둑>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그의 특질에 비하면 싱겁고 평범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접고 본다면, 호러 소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이 책은 다른 의미로 재밌어질 거다.

하비는 늘 따분해하면서도(이 녀석은 '거대한 회색 짐승' 2월에게 잡아먹히는 따위의 상상을 하는 놈이다) 또 뭔가를 하긴 귀찮아하는 평범한 아이다. 어느 날 이 게으른 녀석에게 기괴한 손님이 찾아든다. '릭투스'라고 부르는 이상한 손님은 그를 꾀어 마을 건너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차원)에 있는 후드 저택으로 초대한다. 그곳은 원하는 건 뭐든 있고 가질 수 있지만 의심 많은 하비에겐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알 듯 모를 듯한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뭔가에 속고 있는 것 같아!

<아바라트>처럼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은 아니지만 책은 충분히 기괴한 스케치로 가득하다. 역시나 바커 자신이 그린 것.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평범해지고 그의 상상력은 신선하달 게 없지만 그렇다고 읽는 재미가 떨어지진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 지은이 특유의 문장 솜씨일 수도 있겠고,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그의 색을 충분히 드러내는 갖가지 존재들과 그들에 대한 묘사 덕분일는지도.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요소가 고루 잘 배합된 탓일 수도 있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잘 씌어졌고 재밌다는 것. 최고다!는 아니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 그리고 이 책이 재미없다면 <아바라트> 역시 재미없을 거라는 것 정도.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read or trash? ★★★★) -虎-

§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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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낮에는 언제나 해가 빛나고 밤에는 항상 신기한 일로 가득한 곳을 알고 있지."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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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사내에들은 항상 유령이나 살인이나 교수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왜냐면 신나니까요."
웬델이 말했다.
"너희는 괴물이야."
그녀가 미소를 감추며 대답했다.
"그게 너희들이지. 괴물들." (p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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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섭지 않아."
"그렇다면 너는 바보야. 너는 무서워해야 해."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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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될 거야. 우리는 자랄 거고 그리고 잊겠지. 하지만..."
"하지만 뭐?"
룰루가 말했다.
"우리가 매일 아침 이 일을 기억한다면. 아니면 이야기 하나를 만든다면, 그리고 그걸 만나는 모두에게 이야기한다면."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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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드에게 한 가지는 감사할 일이 있는 것 같아."
"뭔데?"
"우리가 함께 아이로 지낸 것." (p.294)
2003/11/28 15:43 2003/11/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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