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이라, 이것처럼 많이 우려먹고 이것처럼 진부하지만 또 이것처럼 늘 호기심을 당기는 소재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저 이 책에 대해 그저 '시간 여행 SF'라고만 해버린다면 너무 서툰 정의가 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제인 에어 납치 사건>이 떠오른다. <제인 에어 납치 사건>을 시간 여행이랄 수는 없지만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들락거리며 좌충우돌하는 SF이고 뭔가를 바로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책이니까 ^^; 이 책 또한 그 빅토리아 시대를 주요 무대로 하고 있다. 둘 다 그저 SF라고 말하기는 복잡미묘한 장르성을 띠고 있기도 하고.
시간 여행의 설정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과거나 미래로 주인공이 아무리 왔다 갔다 하더라도 본디의 역사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그러니까 시간 여행자가 관찰자 수준이 되는),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미래에는 끔찍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시간의 '탄력성'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즉 시간은 자가 수정 능력 같은 것이 있어서('역사 보존의 원칙' 이런 거였나?), 현재의 인물들이 과거로 가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더라도 잠시잠깐의 부분 변화는 있을지언정 역사의 큰 줄기는 변하지 않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조정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지점으로는 아예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다. 그럴 듯하다. 그래서 '시간 편차'라는 것이 생기고 자주 '강하'(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이렇게 부른다)를 하면 '시차 증후군'이라는 것도 경험하며... 블라블라블라.
암튼 우리의 주인공 네드는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찾기 위해 과거로 간다. 난 처음에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찾는 게 이 책의 스토리인 줄 알았는데--게다가 저게 뭔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어떻게 생긴 건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결국 책 끝에 가서야 뭔지 나오지만 그게 뭔지는 절대 안 중요하니까 나처럼 괜히 궁금해서 안달하지 말 것(실은 저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_-;)--알고 보니 그건 곁다리.
네드는 별 것 아닌 듯한 어떤 만남을 방해하는데, 이게 연달아 물리고 물리고 물려서 세계 2차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자, 다시 본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연합군의 승리 어쩌고는 했지만 그건 연쇄 작용의 결과로 예상하는 것일 뿐 실제로 이들이 군대나 전쟁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언혀 상관없는 고양이 살리기, 다른 사람 연애에 끼어들어 성사 또는 훼방놓기 같은 일들밖에.
코니 윌리스는 아줌마고, 수다쟁이다.(왼쪽 사진 : 에엥, 이 책을 썼을 것 같지 않은 얼굴이야) 번역자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수다가 다 있나!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폭소는 아니지만 키득거림 또는 큭큭댐을 멈출 순 없다.
이 책의 매력을 들자면 한이 없다. 곳곳의 인용들이며, 등장인물의 대사와 그 성격들,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구성, 또 그 안에 포함된(드러나게나 은근하게 감춰진) 위트와 유머, 아기자기하고 흐뭇한 로맨스(므흣),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과 정경들(난 어쩐지 빅토리아 시대가 좋더라.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들은 전부 재밌었다)...
이 책은 SF이면서 미스터리이자, 로맨스이기도 하고 유머와 문학의 재미를 골고루 갖춘 멋진 책이다. 하지만 역시, 장르적 속성을 뛰어넘은 책 번역의 부담이었을까, 최용준은 결코 나쁜 번역자가 아님에도(오히려 과학소설 번역에는 뛰어난 면을 갖고 있는 번역자다) 문학적인 표현이나 인용들에 대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문학과 고전에 대한 이해, 폭넓은 어휘 구사 부족으로 코니 윌리스의 '수다스러움'을 일푼은 깎아내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게 이 책이 멋지고 재밌다는 사실을 완전히 깎아내리진 못한다. 어쩌면, 처음 100페이지까지는 대화가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의 유머에 올라타기만 하면 700페이지쯤 아무것도 아니다. 이 아줌마의 다른 책 <파멸의 책> 출간 소식이 들린 지 몇 개월 되었는데 어찌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엔간하면 얼른 나와주시지잉~ -虎- (read or trash?
★★★★☆)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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