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루이자 몰스워스 지음, C. E. 브록 그림, 공경희 옮김
어린 소녀에게는 아무런 재미도 느낄 수 없는 늙고 지루한 저택에 그리젤다가 온다. "거기 사는 사람들도 너무 늙어서 더 늙을 수도 없을 같았고, 변화할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곳.
그리젤다는 어찌나 성질이 더러운지(-_-;), 공부하기는 싫어하고(특히 산수는!) 재밌고 특별한 것만 찾는데다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심술 부리기 일쑤다(아래의 표정을 보라). 성미를 돋운다고 시계에 책을 집어던질 정도로 만만찮은 성격(거의 콩가루지)을 지녔지만, 애는 애인지 잘못한 일에 금방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그리젤다가 경험하는 이야기는 새롭다거나(그럴 리 없잖아, 130년 묵은 고전인데) 신선하진 않다. 우연한 실수--제 성질을 못 이겨서--로 뻐꾸기 시계를 고장내고 그 일로 뻐꾸기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그리젤다. 뻐꾸기는 그리젤다를 여러 상상의 나라로 데려다준다. 자신보다 어린 친구 필을 만나고, 그러면서 제멋대로 하기보다 도리에 따르는 법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지금 읽어서는 여기에 묘사되는 상상의 나라들이 특별하게 느껴질 리도 없는데, 그럼에도 이 책은 그리젤다와 뻐꾸기의 /만담/(만담이 아니고서야) 때문에 꽤 매력적으로 읽힌다. 시종일관 훈계하는 뻐꾸기와 나름의 이론을 세워가며 대꾸하는 그리젤다의 대화는 이 책의 압권 중 압권이다. 삽화로 쓰인 일러스트들도 아주 마음에 들고.(이 시리즈의 책들이 전부 그렇다)
한 가지(이제부터 재미없는 얘기다), 난 그동안도 공경희가 번역을 썩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책도 거슬리는 게 있다. 시종일관 "명령에 순종"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도리에 따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이 책이 교훈성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명령에 순종하는 게 교훈이라고 하진 않겠지. 아니면 설마, 작가를 보수적이고 시대에 떨어진 인물로 보는 건가?
만약 그랬다면 착각이다. 그리젤다는 상상의 나라를 통해서 현실의, 나와 다른 사람이 공존하는 동아리에 적응하는 법을 깨달은 거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세상이 움직이는 데는 '도리'가 있고, 그에 따라야만 온전히 동아리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통과의례 같은 것. 그게 교훈이라면 교훈.
아이들은 언제나 '명령'에 '순종'을 해야 한다고 몰스워스가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너무너무너무나 "놀고 싶다"는 그리젤다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는 없었을 거다. 이 책의 결론은 그리젤다가 교훈을 얻는 것으로 마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으로는 마지막에 묘사한 그리젤다의 (어쩌면 서럽고) 슬픈 울음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젤다는 마지막까지 요정나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진짜 요정나라로 가는 길은 찾기 어렵고, 저희가 알아내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리젤다는 많은 상상의 나라를 다니며 그곳에서 뭔가를 배우면서, 즉 '성장'을 하면서 그들을 잃었다. 아이가 흘린 눈물은 다시는 그렇게 놀 수 없다는 상실의 눈물이다. 뻐꾸기가 그렇게 강조한 '상상'은 결국 '놀이'이고, 상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놀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젤다는 현실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것들을 잃는다.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뻐꾸기 시계>는 앙큼한 그리젤다의 모험담이면서, 그리젤다와 뻐꾸기의 만담집이며, 성장의 상실(오오, 얼마나 미묘한가)을 안타깝게 표현한 팬터지다. 명령에 순종? 교훈? 어불성설! 오히려 작가는 천방지축의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틈만 나면 요정의 나라로 놀러갈 꿈을 꾸고 있다! (read or trash?
★★★★☆)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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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읽기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필리파 피어스, 시공주니어)
-- 아동문학 평론가이자 번역가인 김서정 씨도 그랬지만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뻐꾸기 시계>의 현대적 변용이다. 따로 떨어뜨려 놓고 보면 서로에서 각자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면서도 같은 궤도를 그리고 있다. 따로 책을 읽어본 사람들도 옆에 놓고 함께 읽으면 또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듯. <한밤중 톰...>의 서평 참조.
§ 포스트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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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 안팎은 정말로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거기 사는 사람들도 너무 늙어서 더 늙을 수도 없을 것 같았고, 변화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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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고! 크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이건 상상의 문제란 말이야. 이 세상과 너를 포함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작아서 호두 한 알에 들어갈 수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걸 모르겠니?"
"이상할 게 없다고? 나를 빼면 몰라도 나까지 호두 한 알에 들어간다는 건 이해가 안 돼."(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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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걸. 몇 명 가봤을지 모르지만, 많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그 몇 명도 실제로는 안 가 봤는데 가 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진짜 가 본 사람들에게 한 가지는 분명할 거야. 누가 데려간 게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았다는 것 말이야. 요정나라에, 그것도 잔짜 요정나라에 남이 데려갈 순 없어. 요정나라의 이웃 나라까지 데려갈 수 있을지 몰라도, 요정나라에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다고." (p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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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고! 시간이 뭔데? 아, 그리젤다. 넌 정말 많이 배워야겠다! 시간이 뭐야?"
그리젤다는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나도 몰라. 늦거나 빠른 것, 그게 시간인 것 같아."
"그럼, 느린 건 뭐고 또 빠른 건 뭔데? 모든 게 상상의 문제라니까! 세상이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일이 5분 동안에 다시 일어난다면 어쩔래?"
"뻐꾸기야. 네가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덧셈보다 더 나빠. 그만큼 날 놀라게 한단 말이야. 네가 말한 것처럼 더도 덜도 아닌 최악이라고. 분밖에 없다면 시간과 날은 어디로 가는데?"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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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보모가 있지. 엄마도 있고. 누나는 안 그래? 하긴 누나는 크니까. 사람들은 크면 보모와 엄마를 떠나지. 안 그래? 크면 생일이 없어지는 거랑 똑같이. 하지만 난 안 그럴 거야. 어쨌든 엄마는 계속 갖고 있을 거야. 보모랑 생일은 없어져도 괜찮아. 별로 상관없어. 누나는 다 컸기 때문에 떠나야 했을 때 속상했어?"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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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잘못이라고 안 그랬어. 왜 그렇게 금방 결론을 내니? 자주 혼자 생각으로 너무 멀리 나가서 결론을 내는 건 아주 나쁜 습관이야. 결론이 날 때까지 언제나 걸어 나가야 해. 아주 천천히, 꾸준히. 먼저 오른발을내딛고, 다음에는 왼발을 내딛고 그렇게 뚜벅뚜벅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거야. 확실히 땅을 디디면서. 알겠어?" (p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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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카스, 내가 보기에는 모든 게 '명령에 순종하는' 것 같아요. 저기 해가 있잖아요. 해가 뜨니까 달은 자러 가고. 해와 달은 항상 순종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든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아이들은 그래요."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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