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들을 흔히 '잡문'이라고 이름지어 놓고, 나에게 '잡문 쓰는 걸 자제하라'고 충고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우정 어린 충고를 오래 무시했다. 그대들에게는 잡문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아니다. 나는 대체로 이런 주장을 폈던 것 같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글을 써 놓고 그것을 잡문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허어.. 멋진 말이군.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윤기 산문집, 시공사)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 맞아, 나도 그래.
나는 이윤기의 뼈를 <뮈토스 1~3>(고려원)와 <하늘의 문 1~3>(열린책들)과 <신화의 힘>(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과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에서 모두 얻었다. <신화의 힘>과 <뮈토스>에서는 그가 신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하늘의 문>에서는 그의 삶과 사상을, <장미의 이름>에서는 번역가로서의 치열함을.
번역가로서는 더 말할 건덕지 없고, 소설가로서는 뒤늦게 인정받았다. 신화에 관해서는 과장되이 평가받거나 지나치게 폄하되는 면이 있다.
먼저 한 가지 말해두자. 그는 '신화연구가'가 아니다. 어느 책에선가, 지은이 소개에 그리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또 어딘가에는 '종교학자'로까지 표현된 일도 있다. 아마 출판사의 획책(?)이었겠지만 저래선 안 되는데.. 싶었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신화에 관심하고, 여러모로 공부도 남다르게 했을지언정 그는 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그의 신화책은 신화 학술서가 아니라는 소리다. 신화를 공부하기 위해 이윤기 책을 볼 이가 있다면 서둘러 막아야 한다. 그는 신화를 재미있게 읽기 위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일전에 어느 자리에서 이윤기를 비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책에서 설명한 도판의 해석이 몇 군데가 틀렸으며.... 운운.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했을 때도 패널 중 한 사람이었던 노성두가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둘 다 옳은 얘기다.
헌데, 그건 읽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의 신화책은, 아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학술서가 아니라 산문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의 깊이 있는 공부가 뒷받침된 데다가, 책의 상품적인 가치를 위해서는 그가 "전문가"로 보일 필요가 있는 출판사의 입장 탓일 게다.
그래서 나는 이윤기를 신화연구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신화에 한해서는 그 또한 나처럼 학생이기 때문에. 좋아서 관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학자나 연구자이기에는 말이 너무 많다. 그는 태생적으로 이야기꾼이며 구라쟁이다. 그의 공적은 신화를 면밀하게 연구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화를 대중의 안으로 쉽게 가져온 데 있다.
Das Monstrum in meinem Selbst
나는 그가 살아온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모방하고 좇았다. 처음엔 책으로부터 그에게 도달했지만 나중엔 그로부터 책에 가까이 갔다.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렇게 그를 발라 먹었다. 이젠 그가 한 마디를 하면 다음 세 마디를 짐작한다. 그 이야기가 어디 어느 구석에서 되풀이 되었는지 기억한다.
그의 번역서 가운데 하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영웅은 괴물이나 폭군을 죽이고 영웅이 된다. 영웅은 영웅으로서 죽지 않으면 그 자신이 괴물이 된다. 그는 다른 영웅에게 죽는다.
그의 지인들은 아마 '동어반복'이라고 부른다나만, 그도 옛날의 이야기꾼들처럼 되풀이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많이 말하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되풀이 말하는 것은 싫다. 글이 넘치는 것은 이해하지만 사상이 반복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나는 그의 껍데기를 보아 왔다.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을 읽으면서 그리 생각했다.
- 저이의 골수는 이제 다 빨아먹고 껍데기만 남았구나.
너무 오래 보아온 탓일까. 방석 하나를 오래 눌러 앉은 그는 폭군처럼 보인다. 사상을 강요하는 지점이 보인다. 처음 그를 읽을 때는 평생을 가도 좇지 못하겠구나 했다. 그의 가르침이 옳거니. 장자가 그랬던가,
'스승님이 걸으시면 저도 걷고, 스승님이 빨리 가시면 저도 빨리 가며, 스승님이 달리시면 저도 달립니다. 하지만 스승님이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달려가시면 저는 그저 뒤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너무 오래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몸을 멈출 수 없다. 그를 지나치려면 그를 죽여야 한다. 내가 오늘 죽일 괴물은 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이기 때문에, 그가 입은 글을 읽긴 할 것이다. 내가 두른 몸피의 많은 부분이 그의 허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의 허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시작하여 두를 수 있었던 많은 몸피가 허물에 미련을 두고 있기 때문에. -虎-
나의 이윤기 베스트 5 (+1) (신화, 번역서, 소설)
1. 뮈토스 1~3 | 초판, 고려원
2. 푸코의 추 -상,하 | 움베르토 에코, 초판, 열린책들
3. 하늘의 문 1~3 | 초판, 열린책들
4. 그리스 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초판, 고려원
5. 신화의 힘 | 조셉 캠벨, 초판, 고려원
(6. 무지개와 프리즘 | 초판,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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