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통탄할 준비를 하라!
이럴 때 스스로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포장의 우스꽝스러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경계를 풀고 느슨하게 대응했다가 낭패를 본다. 소재의 흥미로움에도 과연 이런 책이 내게 도움이 될까 싶었던 차에 구입을 망설였는데 인터파크에서 쿠폰을 날리는 바람에 '읽고 버리는 셈 치지'라고 마음먹은 게 말(그저 마음속으로만 말을 한 것뿐인데도)이 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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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경제학>은 세상의 일들을 통념에 기대지 않고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몇 가지 예시 중심으로 풀어나간 책이다. 레빗이 든 예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데다가 질문이 예사롭지 않아 무슨 이야기인지 책을 들춰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경제학자인 레빗은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범죄경제학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예들은 재밌다. 90년대 미국의 범죄율이 급감한 사실을 낙태 재판에서 찾는가 하면 부정을 저지르는 교사들이나 헌혈자들의 행동 패턴, 베이글과 도덕심 등.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 추리들은 미스터리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제법 신선하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그 추론들이 경제학자가 내놓았다고 할 만큼 깊지 않다는 것, 대중 독자들을 생각해서 일부러 쉽게 쓰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경탄할 만한 이야기는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공동 저자인 더브너는 레빗이라는 인물의 유별남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로 괴짜로 불릴 만큼 유별난 인간이고 또 그 이상으로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고 쳐도 그것을 전달하는 데는 별 재주가 없는 친구다. 또는 그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더브너의 능력이 떨어졌든지.
처음 한두 챕터를 읽을 뒤에는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더브너는 한 학자의 말을 빌어 그것을 "...그렇다면 벌써부터 굳이 통합적인 중심 주제가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 젊은이는 재능이 너무 풍부해서 하나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친궁니지도 모르지"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보기엔 이 책에 대한 단점을 알고 있는 더브너의 변명이자 핑계이다(더브너의 핑계는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한 가지 추론을 이야기하기 위해 늘어놓는 상황 설명은 장황하기 그지 없어서, 이 책이 무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잡다한 뒷얘기를 하는 책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KKK단과 부동산업자의 공통점을 찾는 챕터에서 레빗과 더브너는 KKK단이 만들어지고 와해되는 과정을 거의 열 쪽에 걸쳐 지리하게 늘어놓는다. 그 얘기가 어떤 독자에게는 숨겨진 야사처럼 재밌게 읽힐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주변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낙태와 범죄율을 시작으로 불쾌해지기 시작한 감정은 더브너의 또다른 핑계로 극에 달했다. 레빗은 90년대 범죄율의 급감(어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한)을 70년대 한 여성의 낙태 재판에서 비롯된 '잠재적인 범죄자 그룹'의 낙태율 증가로 설명했는데, 이 가설이 어떤 인종차별적이며 반사회적인 사상이 포함되었는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사회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로서 당연히 염두에 두어야 할 쟁점에 대해 단순히 천재의 비사회성(그가 관심하는 것은 사회의 도덕성이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이라는)이라는 식으로 지나쳐버리려고 하는 안이한 태도에는 두 손을 들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을 보자(저자 자신도 인용하고 있다). 이 책도 분명히 지탄을 받을 만한 이론과 가설을 중심에 안은 책이다. 핑커도 인종주의적이며 성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빈 서판>을 읽어 보면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저자의 입장과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더브너와 레빗은 '천재'와 '괴짜'라는 말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있지 않은가.
노숙자가 50달러짜리 고급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이라든지 정전된 현장에서 냉철하게 코드를 찾아 콘센트에 꼽는다든지 하는 것에는 난 관심이 없다. 레빗이 천재인 것에 관심이 없다. 난 레빗이 대단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대단한 이유를 이 책에서 찾고 싶었다. 결국 지은이가 하고 싶은 말은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보지 말고 그 이면을 통찰하라,는 말인데 그 '교훈'을 이렇게 지루하게 늘어놓을 줄 몰랐다. 범죄경제학 전문가라면서... 차라리 쿨하게 학문적으로 접근을 하든지. 허무하당, 허무해.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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