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야기의 이야기
매상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나는 낙관론자라서 오른 것은 내려가고 내려간 것은 언젠가 오를 거라고 내 스스로를 위안한다. 독서라는 예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그것은 내밀한 의식이라고, 책은 거울이라고. 우리들은 책 속에서 이미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발견할 뿐이라고. 우리는 정신과 영혼을 걸고 독서를 한다고, 위대한 독서가들은 날마다 더 희귀해져가고 있다고 베아는 말한다. (<바람의 그림자> 2권 본문, 386쪽)
사람들은 이야기를 즐긴다. 이야기를 즐기는 인자는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태초부터 이야기('뮈토스')가 사회와 동아리의 질서, 더 나아가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고 개인을 그 질서에 합류시키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다. 사실의 파편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줄거리를 만드는 작업은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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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씩 뽑아들고 영업부 아무 씨의 소문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소문인 하나씩 모이면 거기서 이야기가 잉태한다. 이야기를 잉태시킬 만한 소문이 모아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안달복달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상상(또는 공상)이 꽃피운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두는 법을 알지 못한다. 언제나, 무엇이든 '이야기'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미스터리에 빠져드는 이유과도 같다. 긴 이야기에서 빠진 빈 공간을 하나씩 하나씩 메우면서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경험한다. 특히, 이야기의 완성을 가리키는 마지막 빈 공간을 채울 때 희열은 절정에 달한다.
현대로 오면서 소설은 뮈토스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비록 예전에 발휘했던 역할의 편린만을 잇고 있을 따름이지만 여전히 호메로스들은 이곳저곳에서 이야기를 읊조리고 있다. 이윤기가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를 현대의 호메로스로 칭했지만, 스페인의 카를로스 사폰 또한 그 호칭을 붙이기에 부족함은 없다.
모든 훌륭한 이야기는, 인간 정신을 깨워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향하게 하기에, 근본적으로 /성장/ 이야기이다. 따라서 소설도 모두 성장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그림자> 또한 주인공 다니엘이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이다.
한 소년이 소명을 받고 모험에 입문하여 문지기와 입문을 유도하는 여신, 도움을 주는 현자를 만나고, 결국에는 목적을 이뤄 영웅(수퍼맨이나 원더우먼 같은 헐리웃 영웅이 아닌, 신화적 의미에서의 영웅이다)으로 귀환하기까지, 그리고 그 영웅이 변모하고 소멸하며 재탄생되는 과정까지 아우른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여기서 '전형적'이라 함은 온갖 클리셰의 진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정상 궤도만을 되풀이할 뿐인 재미없는 소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감성이 소설 속에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많은 성장 소설이 그렇듯이, <바람의 그림자>의 이야기 또한, 먼저 어둠을 낳는다. 어둠이 있어야 향하여 나아갈 빛을 발견할 수 있고, 빛을 발견하여 되찾는 과정이야말로 성장 소설의 뼈대이니까 말이다. 어떤 성장 소설은 발견해 나가는 빛에 중점을 두는가 하면 어떤 소설은 웅크리고 몸부림치는 어둠에 몰두하기도 한다.
<바람의 그림자>는 후자이다. 19세기 고딕소설을 읽는 것 같은 음산하고 황량한 바르셀로나의 무대는 스페인의 활기차고 열정적인 기왕의 이미지를 뒤바꿔놓기에 충분하다. 훌리안을 뒤좇는 다니엘, 다니엘을 방해하며 다른 식으로 훌리안을 좇는 푸메로, 훌리안의 그림자인 쿠베르, 이들 '영웅'들과 함께 다니엘의 아니마('내재하는 여성성')이자 베아트리체(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의 화신 베아트리스와 소멸한 아니마 페넬로페의 행보는 바르셀로나를 신화의 새로운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만일 누군가 진정한 고딕 소설이 19세기에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그런 생각을 바꿔줄 것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주의할 것. 이런 책이 있다면 텔레비전의 좋은 프로그램과 행복한 뉴스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 스티븐 킹(밑줄은 내가 강조한 것)
<바람의 그림자>는 아직까지는 그리 대중에게 많이 소개되지 않은 스페인 문학이라는 점 외에도, 미스터리와 모험이 적절하게 배합된 모험 소설에서 시작하여 남녀의 애절한 애정 로망으로 절정을 치닫다가 그 둘이 만나면서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흥미를 돋운다. 이야기는 고딕 소설의 분위기와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융합되어 순수문학에 가까우면서도 장르적 성격을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두 개의 커다란 이야기 줄기는 다른 '이야기'를 품에 안으면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말하고, 이야기 뒤에 이야기가 맞물려, 이야기 속에 이야기, 이야기 바깥에 이야기를 둔다. 이야기 스스로 이야기의 존재를 대변하는,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성을 넘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소설이란 뜻이다.
좋은 책들은 그렇다. 읽는 이마다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의미를 끄집어내도록 독자를 이끄는 힘이 있다. 나는 이 책을 거의 읽어가는 와중에 박재삼의 시를 떠올리며 간극을 초월한 보편성에 새삼 놀랐다. 다른 이들 또한 다른 놀라움에 즐거워하기를. -虎-
어지간히 구성진 노래 끝에도 눈물 나지 않던 것이 문득 머언 들판을 서성이는 구름 그림자에 눈물져 올 줄이야.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마음 그림자는, 드디어 마음에도 등을 넘어 내려오는 눈물이 아니란 말가.
-- 문득 이 도령이 돌아오자, 참 가당찮은 세월을 밀어버리어, 천지에 넘치는 바람의 화안한 그림자를 춘향은 눈물 속에 아로새겨 보았을 줄이야.(박재삼, ‘바람 그림자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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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여 :
책에 따라서는 분권을 싫어하지만은 않지만 이 책은 그냥 한 권으로 묶어 내주는 편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허리를 잘라먹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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