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하면서 읽은 책의 종류는 일정하게 정해지게 마련이다. 일단 가볍고 작아야 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딱딱한 책은 금물이다. 가능하면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단락단락 구분되어 있거나 단편이면 좋다. 그렇게 생각하니 늘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은 가벼운 장르에 단편집이거나 소설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만화책도 좋기는 하지만 거의 한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길에 만화책은 적어도 한 권 이상을 읽게 되므로 귀찮아지고.
출퇴근길의 책읽기라니, 짬을 내어 읽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하루의 책읽기 시간을 다 합쳐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갈아타고 걷는 시간을 빼더라도 거의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은 길 위에서 책을 읽는 셈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그 외의 책들만 읽는 것도 아니고, 역시 궁금한 나머지 읽다만 책을 펴기 일쑤인데...
그래서 지난 주부터는 그런 편견(?)을 깨고 <빈 서판>(스티븐 핑커, 사이언스북스)을 들고 다니고 있다. 900페이지를 육박하는 두께에 크기도 보통 단행본보다 크고 무게를 따지면 웬만한 아령을 드는 것 같다. 아주 딱딱한 책은 아니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요즘은 노트북을 배낭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두 손이 자유로워져서 할 수 있었던 시도다. 일단은 성공. 2~3일을 출퇴근길에만 읽었는데 200여 페이지를 읽었다. 확실히 팔뚝이 뻐근하지만 집이나 지하철이나 집중하는데는 별로 차이 없는 듯하다. 하기사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니까.
막상 들고 다니니까 큰 책이나 작은 책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서서 읽을 때는 한 손으로 받쳐 들기가 좀 버겁기는 하지만 양 손을 번갈아 사용하면 아주 긴 시간을 가는 것도 아니므로 고역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읽고 사무실에 들어가 출근하면서 읽은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다. 퇴근하면서 또 읽고 집에 가서 간단히 정리.
그저 즐기기 위한 책이 아니라 지식의 습득도 함께 하는 인문서나 과학책은 읽는 중간중간 메모나 기록을 한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도 있고,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나중에 책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싶었다. 읽으려고 생각하면 물리적인 문제는 그냥 '불편함'뿐, 요즘은 우체국이나 은행에 갈 때도 책을 하나씩 끼고 간다. 가끔 사람이 밀려 2~30분씩 기다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아주 요긴하게 시간을 채운다. 어떤 책이든,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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