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청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일본 미스터리 기획 기사인데, 각론으로 7대 작가(라고는 하지만 한국에 많이 소개된)에 대한 평을 싣나 봅니다. 전 당연히 미야베 여사님을 고르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필자가 섭외되어 있었고 고를 수 있는 건 히가시노 게이고요코미조 세이시요코야마 히데오뿐이었죠. (칫) 최근 읽은 『이누가미 일족』이 조금 재밌었지만 그놈의 긴다이치 고스케는 좋아할 수 없는 탐정인지라 제외, 안 그래도 밀린 책이 있어 읽으려는 참인지라 잘됐다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를 선택했습니다.

집에 구석구석 박힌 책을 다시 끄집어내고, 미처 구입하지 못했던 작품들을 신간과 함께 주문했습니다. 그렇게 책상 한편에 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책이 많더라고요. 몇 권은 빠진 상태인데도요. 서른 작품에 가까운 양이 너무 단기간에 나온 탓인지 일부 독자들은 벌써 질린 모양이에요(그를 비롯하여 온다 리쿠니 미야베 미유키도 같은 신세). 하지만 저는 책을 보며 뿌듯했답니다. 겨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달랑 『백야행』 한 작품밖에 번역되지 않은 걸 생각하면 감개무량할 지경이에요.

새로운 작가를 아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한 작가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하는 즐거움도 제법 크거든요. 서너 권쯤 읽으면 그 작가가 대충 어떤지 다 알 것 같고, 그다음에는 별다른 재미를 못 느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말이에요. 비슷한 작품 사이에 느껴지는 세밀한 차이라든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스타일이라든지 반대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무언가를 찾는 기쁨. 게다가 한 작가를 꾸준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때까지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쁘더라고요. 언제 이렇게 한 작가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나 싶어서 말이죠. 작가를 대표작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백야행』 한 작품의 히가시노 게이고와 서른 작품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제게 전혀 다른 작가예요. 마찬가지로, 제가 『화차』를 읽고(정확하게는 『인생을 훔친 여자』지만요) 받았던 감동은 그 뒤로 다른 수많은 미야베 여사의 작품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또 달랐어요. 한 작품 한 작품의 감동도 다르고, 그 작품들이 하나씩 쌓여 갈 때마다 느끼는 '총체적인 감동'도 다르죠. 때때로 처음 읽었을 때의 감흥과 작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읽었을 때의 감흥이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줄거리와 결말을 알았다고 해서, 반드시 전부를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기쁩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꾸준히 소개된다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그만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이니까요. 그 사람의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비록, 한국 출판 시장이 일본 미스터리 붐에 편승하여 인기 작가에 매달린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축복이겠지요. 이 축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나아가 몇몇 작가에 편중되지 않고 더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을 수 있기를, 돌탑에 비는 마음으로 쌓인 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번에 읽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작가일까요?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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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0:29 2008/11/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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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의여왕 2008/11/20 10:30

    멋진 호야님의 멋진 글이에요 : )
    그건 그렇고, 호야님 블로그에도 상주 신고- 꽝!
    앞으로 저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기 힘드실겝니다. 흐흐흐...
    (점점 이미지가 이상해지고 있네요 -_-;;
    스토킹하고 이런 캐릭터 아닌데)

    • 호야 2008/11/20 11:01

      결국 커밍아웃하셨군요. 킥킥. 스토킹의 여왕님 만세! (의미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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