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홉 칸에 담긴 우주
도리 미키 지음
새만화책 펴냄
개그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세 재능이 고갈되거나 노이로제에 걸리거나 잠적하거나 하여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도리 미키는 몇 사람 되지 않는 나의 귀중한 동지이자 우리 시대의 재주꾼이다. 확실히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먼 곳으로 가고파>를 보고, 솔직히 말해 나는 분했다. 그래, 올해부터는 나도 다시 힘을 내어 재미있는 만화를 그릴 거야.
― 이시카와 준(만화가/만화평론가, <만화의 시간>)
도리 미키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는 아니다. 뚱한 표정으로 변기에 앉아 있는 표지 캐릭터의 모습만으로는 이 책이 개그 만화일 거라고 단순히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길수록 뭔가 이상하다. 개그의 포인트가 어느 즈음인지 초점을 맞추기 힘들다. 아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넘친다. 이걸 이야기라고 불러야 할는지 아닌도 모르겠다.
이런 식이다――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알고 보니 대머리 아저씨가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깊숙한 동굴을 탐험하여 바깥으로 나오니 지구라트가 보인다. 그 꼭대기에는 냄비가 놓여 있다. 주인공은 냄비를 들고 동굴을 다시 통과해 싱크대 밑으로 나와 아내에게 건네준다.
도리 미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적이며 이성적인 이치들을 파괴하거나 재구성하여 그 안에서 웃음을 찾는 작가다. 아홉 칸으로 완결되는 이 만화들은 아무 대사도 설명도 없이 그저 상황만 나열될 뿐인데, 언뜻 무의미한 마구잡이 개그 같아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만의 규칙이 보인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도사린 ‘비논리(또는 부조리)의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재미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는 행간의 간극도 크고 비약이 심해 알 듯 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 ‘아하!’ 하고 돈오(頓悟)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웃음.
‘돈오’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 책의 이야기들은 선문답을 SF의 문법으로 변주한 개그 만화 같다(그렇다고 득도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패러독스 개그를 넘어 짜릿한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한다. 그 과정은 마치 자전거와 연필처럼 전혀 상관없을 법한 두 사물에서 공통점을 찾는 일과 같은데, 그래서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는 두(또는 그 이상의) 사물간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종의 게임이다. 독자는 비논리에 가려진 단서를 발견하는 동시에 웃음의 버튼을 누르게 된다.

도리 미키는 기억해 둘 만한 작가다. <먼 곳으로 가고파> 1권은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기 바란다. 1권을 다 읽고 나면 2권은 훨씬 읽기 수월해진다. 2권을 읽고 나면 1권으로 돌아가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일 것이다. 그러고 나면 틈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펴 보고 싶은 중독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보여 주는 새로운 세계의 개그는 처음의 장벽을 공들여 넘을 만한 가치가 있다. 도리 미키는 ‘개그’의 정의조차 새롭게 만드는 만화가이다. 다 읽고 나면 "나는 분했다", "나도 힘을 내어 재미있는 만화를 그릴 거야"라고 하는 이시카와 준의 마음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虎-
§ <판타스틱> 2호에 실린 글을 다듬어 올림.
- 책표지의 도리 미키의 영문 이름을 잘 보면 Mickey "Bird"다. 하하하!
- 이 작품은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에 소개되어 여러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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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책 대박 재미있네요. 저랑 은근히 코드가 맞습니다. 이 만화는 '한 번 보면 잘 모른다'라는데, 저는 지하철에서 오고가며 읽다가 한 번에 큰소리로 웃고 말았습니다. ^^